등산/등산산행기

이거 실화냐? 팔공산에서 러셀을 하다니... 그것도 춘삼월에...

등산바이블 2018. 3. 1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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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핏짜 김진모입니다.



전 날 영축산에서 신불재까지 다니며 덕유산 못지 않은 눈꽃 산행을 즐겼지만 대구에 몇십 년 만에 어마어마한 폭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웠습니다.


멤버를 모집했으나 실패...ㅠㅠ


그냥 가지산이나 갈까? 신불산을 다시 다녀올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으며 '그래 결심했어!'



부산역으로 가서



따뜻한 아침 햇살을 맞으며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4번 출입구 방향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우측 끝에 있는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파계사 종점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동대구역 버스 정류장에는 파계사 101-1번, 동화사 급행 1번, 갓바위 401번이 15~20분 간격으로 자주 있으니 원하시는 곳으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귀가시 하차는 정류장 길 건너편에서 합니다. 동대문역지하차도 정류장)



원 계획은 파계사 입구에서 한티재, 팔공산 비로봉, 갓바위(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慶山 八公山 冠峰 石造如來坐像))도 만나고 선본사까지 약 19km를 눈 구경하며 슬슬 다녀올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티재에 올라 산행을 하다보니 설렁설렁 다닐 분위기가 아니여서 지속적으로 시간 확인을 하며 코스를 변경하여 서봉을 지나 오소재에서 비로봉을 오르지 않고 동화사로 하산하였습니다.



핏짜 팔공산(파계사종점 한티재 파계봉 서봉 오소재 동화사입구) 180310.gpx


왜 이렇게 코스를 변경할 수 밖에 없었는지 먼저 설명을 하자면



파계사 종점에서 파계사를 들리지 않고 신나게 눈 구경을 하며 도각봉까지 올랐을 때는 1시간 3분 정도로 원만한 속도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계획에 별 차질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도각봉 지나서부터는...



1km 당 30분, 40분...


5~6km 구간은 1시간 8분, 6~7km 구간은 무려 1시간 20분이나 걸렸습니다.


물론 쉬면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아닙니다. 5~6km 구간에서는 15분 남짓 식사를 했으나 6~7km 구간은 쉼 없이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저렇게나 많이 걸렸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걸렸는지는 아래 사진 및 영상과 함께 산행 코스 따라 이동하며 설명해 보겠습니다.



파계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임도를 따라 파계사로 올라가 성전암을 거쳐 한티재, 파계봉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만 저는 오토 캠핑장 좌측으로 빠져 바로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등산로 초입부터 평생 만나지 못했던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시체처럼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습니다.




전날 영축산은 거의 정상 가까이인 취서산장을 지나서야 눈 다운 눈이 보였었는데 이 곳 팔공산은 산길로 접어드니 바로 눈길입니다.




하지만 날이 따뜻하니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눈들이 녹아가며 물을 흩뿌리고 있습니다.




눈 녹은 물만 흐르면 다행인데 주위에서는 심심찮게 꽤 큰 눈덩이도 함께 흩뿌리고 있습니다.


간혹 이처럼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떨어지지 않을까 조심하며 다니게 됩니다.


다행히 산행 내내 무게감이 느껴지는 낙하물을 맞지는 않았지만 눈 녹은 물은 물론이고 뭉텅이로 된 눈을 맞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눈길은 재밌고 즐겁습니다.


이 표지목 다음의 내리막은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로 푹신하고 부드러워 너무 좋았습니다.


오늘 팔공산 산행 중 처음으로 발이 푹푹 빠지며 진짜 눈길을 밟는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너무 재밌게 달리느라 영상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나무를 쳐다보니 오늘 이른 아침 혹은 어제 눈꽃과 상고대가 만발했으리라 생각되는데 지금은 너무 늦었나 봅니다.


너무 많이 녹아 버려 솔직히 그렇게 예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푹푹 빠지는 부드러운 눈길을 걸으며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나 즐겁기에 멋진 풍경을 보지 못한 것도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산길을 가는 내내 이렇게 푹푹 빠지며 걷는 것이 너무 즐거워 오늘 이 곳 팔공산에 온 것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곳이 도각봉입니다.


시간을 확인해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잘 올라왔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아 고운 눈밭을 걷는 기분은 정말 최고입니다.



점점 눈이 두터워진 것 같습니다.


밟는대로 푹푹 들어갑니다.



걸어온 곳을 돌아보니 푹푹...



속도를 내기에는 눈길이 말 그대로 발을 잡아 끕니다.


그냥 한 발 한 발 묵묵히 갑니다.



쌓여 있는 눈밭을 자세히 보니 눈의 결정들이 뭉쳐 있는 것이 제대로 보일 정도로 장관입니다.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눈 구경 하러 왔으니 둘러보며 가야겠지요.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이 또한 장관입니다.


하얀 설원에 제가 걸어 온 흔적만이 선명하게 있습니다.



넌 이름이 뭐니~




원당봉산표석입니다.


'원당은 왕실의 안녕이나 명복을 빌던 장소를 뜻하며, 봉산은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금지한 산을 의미한다'라고 합니다.


장시간 홀로 눈 덮인 길을 발이 푹푹 빠지며 걷다 등산 오신 일행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잠시 따라 걸어 가며 영상을 담아 보았습니다.


위의 영상을 보시면 오늘 이 곳 팔공산 주능선에 눈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그리고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즐겁지만 힘들다...하하



멋드러지게 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은 노송에 쌓인 눈이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이 곳에서 앞서 가시는 분들께 어디까지 가시냐고 물어보니 길이 험해 파계재에서 하산 하신다네요.


그래서 조심해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먼저 길을 떠났습니다.



위의 큰 나무 뒤에 있던 멋지게 생긴 나무인데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저 큰 가지가 부러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파계재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33분.


갓바위까지 가는 것은 이미 포기했고 비로봉까지 세 시 정도에 도착해서 동화사로 하산하기로 생각했습니다.


점심 시간이 다 되었으나 파계봉까지 가서 먹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나무가 이길지 눈송이가 이길지...



이른 아침에 올라왔으면 정말 멋있었을텐데...



푹푹 빠지는 눈길은...


정말 대단합니다.



멋지다~



파계봉에 도착하였습니다.



인증 사진도 한 장 찍고...


해발 천고지 정도의 고산인데도 바람도 없고 날씨도 따뜻하여 지금껏 쫄쫄이 한 장에 장갑도 안끼고 산행했습니다.


안경에는 가끔 눈이 녹아 떨어지는 물에 맞아 물방울이 가득하네요.


뭐 당연하지만 컨디션도 좋고 체력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파계봉 인근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어 식사할 곳을 찾아 고고~~~



이젠 밟으면 밟는 대로 끝도 없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영상을 찍어 보았습니다.


재밌기도 했지만 벌써 몇 시간째 이렇게 다니고 있으니 이젠 슬슬 지겨워지고 있습니다.


사실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영상을 찍고 싶었는데 한 손으로 촬영을 하면서 내려오기에는 너무 위험해서 찍지 못했습니다.


내려올 때는 발이 허벅지까지 빠지면서 미끄러지고 순식간에 쫙 내려오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는데...


그 영상을 찍었으면 보시는 분들 모두 오고 싶어 하셨을겁니다. 하하


나중에는 그저 조심조심...



열 두시 삼십 분쯤 양지바르고 평평한 눈밭이 보이길래 식사를 위해 멈췄습니다.


고어텍스 자켓을 바닥에 깔고 앉으니 아주 좋습니다.


어제 마트에서 도시락을 고르다 오늘 힘 쓸일이 많을 것 같아 장어 덮밥을 골랐는데 아주 잘했습니다.


중국산 장어지만 부드럽고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비록 쌀알이 얼어 딱딱하지만 입에 들어가면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습니다.


한 바탕 힘을 쓰고 걸었더니 밥 맛이 꿀 맛입니다.


이것으론 칼로리가 부족할 것 같아 슬라이스 치즈도 다섯 장 먹었습니다.


찬물에 잘 녹지도 않은 커피 한 잔 하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의 목적지 비로봉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도 아직은 멀게 느껴집니다.


오룩스맵으로 거리를 확인하니 5km 정도네요.


평소 같으면 1시간 30분 정도 더 가면 될텐데 오늘은 쉽지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 합니다.

서봉으로 향하다 너른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아마 헬기장인듯 합니다.


새하얀 눈으로 덮인 이 곳에 낯선 발자국이 있습니다.


조그만 것이 앙증맞고 귀엽습니다.



이 곳에서 비로봉을 보니 아까보다 많이 가까워져 보입니다.



능선에 온통 눈이 쌓여 꽤나 위험한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로프가 있는 구간도 평상시에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을텐데 지금처럼 눈이 많이 쌓여 있으니 길이 보이지 않아 쉽지 않습니다.



바로 옆은 낭떠러지인데 눈이 이렇게나 쌓여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거의 직벽에 가까운 산길에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여 있으니... 거기다 미끄럽기도 하죠.


하하 정말 재미있습니다.



계단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나 온 길 그리고 앞으로 갈 길 모두 눈이...


이젠 눈이 지겨워질려고 합니다.


마치 강원도에서 군생활하는 일병 말호봉이 눈 쓸기 위해 삽들고 하늘을 쳐다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인근에 서봉 정상석이 있을테지만 찾으러 가지 않고 그냥 지나칩니다.


서봉은 지난 2013년 트랭글의 FCB클럽에서 가팔환초를 진행할 때와 2015년 초보클럽에서 팔공산 정기 산행을 할 때 두 번 왔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가팔환초를 하며 지나왔던 길인데 이번엔 눈으로 덮여 있어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지난 기록을 찾아보니 가팔환초 할 당시 이 곳을 새벽 3시 50분 경에 지나 갔습니다. 그 때도 컴컴한 밤길을 헤드 랜턴에 의지해서 걸었을테니 기억이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비로봉은 어느새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습니다.



서봉을 지나 오소재로 향하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눈이 많이 녹아 있고 질척거리는 곳도 많습니다.



현재 시간 3시 56분


오소재에서 저 위로 오르면 비로봉이지만 그냥 하산하기로 합니다.


비로봉에서 동봉까지 갔다가 하산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긴 하지만 시간이 아쉽습니다. 한 시간 정도만 일찍 왔으면 고민없이 진행했겠지만 지금은 내려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입니다.


저는 수태골보다 동화사로 방향을 잡고 오룩스 맵의 지도를 참고하여 내려갑니다.


확실히 이 곳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길이 너무 질척거립니다.



염불암까지 내려오니 5시가 다 되었습니다.


여기서 동화사 입구까지는 2km 정도 그리고 버스 정류소까지는 1.5km 정도 더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임도로 연결되어 있어 별다른 어려움은 없습니다.


잠시 땀에 젖은 상의를 갈아입고 패딩도 꺼내 입습니다.


간식으로 준비한 삼각김밥을 먹으며 설렁설렁 내려갑니다.





내려오는 길에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동화사 입구에서 버스 정류소로 가는 도로가 공사중이라 한적한 옛길로 내려갑니다.




동화사에 들러 구경도 하고 싶었지만 빨리 밥 먹고 집에 가고 싶어 그냥 지나쳐 왔습니다.




이로서 오늘의 산행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이후 귀갓길은 생략~


이 후기를 빨리 써서 일요일 산행 하시는 분들에게 권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곳 대구 팔공산에서 발이 푹푹 빠지는 러셀을 경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코스를 짧게 한다고 해도 파계사-한티재-파계재-파계사인데 이 조차도 쉬운 길이 아닐꺼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편으론 위험하기도 하니 더더욱 권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조금 여유있게 작성했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이번처럼 눈이 많이 온다면 그 땐 상고대를 보며 다시 러셀을 하고 싶습니다.


항상 부상없이 즐거운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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